2014.12.02 00:03
유아교육학과 1421036 최가희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다. 1915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하였으며, 1918년에는 고등과 교비생으로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천안·연기·청주·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중권과 어머니 이씨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영명학교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관옥을 만났다. 그후 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96년 5월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하였다. 충청남도는 그녀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유관순 상을 제정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수상자에게는 유관순 횃불상을 수여한다.
유관순은 위에 오빠 1명 아래 관복, 관석 2명의 남동생이 있습니다. 유관순은 귀여움을 독차지해야 할 외동딸인 셈인데도 유관순의 어머니, 아버지는 어리광부리는 아이로 키우지 않았습니다. 또, 유관순 아버지께서는 나라가 어려우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고 가릴 것 없이 알고 배워서 힘을 길러야 된다 라고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매일같이 반복 하였습니다. 그 말이 유관순이 어렸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4살이 되던 해 알게 되었습니다. 유관순이 13살 때 아버지께서 빌린 돈을 갚지 않아서 일본인 고마도에게 심한 매를 맞았습니다. 또 우물에 거꾸로 쳐 박아서 기절할 때까지 주먹질을 당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유관순은 아버지의 말을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유관순과 관옥이를 부르고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에게서 당하고 있다는 등 우리나라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유관순은 이와학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유관순은 그곳에 있는 친구들과 친해졌습니다. 그 학당은 1주일에 한 번씩 빨래를 하였습니다. 사실 자기 빨래하기도 힘든데 관순은 몸이 불편한 친구의 빨래도 대신해주고 아무 불평없이 생활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서나 선후배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유관순은 여름방학이면 고향마을에서 아이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유관순은 어느덧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일본은 우리나라를 제일 많이 간섭하였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간섭한 이유는 제나라 세력을 더 펴나가 욕심으로 우리나라를 넘보기 시작하였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 혁명이 밀어났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정치가 부패하여 나라 살림이 어려워 졌고, 그것은 무거운 세금이 되어 백성에게 돌아왔습니다. 또 자기네 말을 듣지 않는 다하여 우리나라의 국모인 인비를 암살하기도 하였습니다. 유관순은 그럴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뒷산에 올라 덕수궁을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인에 의해 황재가 급서하여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마침내 독립운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관순과 유관순 친구들도 같이 죽을 목숨을 다하여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 3월 초가 되자 친구와 유관순은 학교 청소를 하는데 밖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프라이 교장선생님은 막았지만 유관순은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친구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할 때 헌병들은 마구 총을 쏘았습니다. 앞에 사람이 쓰러지면 뒤에 사람이 부축하여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계속되자 유관순과 친구들은 다시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교장선생님이 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학교는 휴교를 시작하였고 친구들은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으니 편지라도 주고받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유관순과 사촌언니 애다 언니는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 가서 유관순과 애다 언니는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 가서 유관순과 애다는 독립운동을 하는 날을 양력 3월 1일 음력으로 4월 1일로 정하였습니다. 유관순과 애다는 독립운동을 하기 전만큼은 독립 운동할 준비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드디어 음력 3월 1일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유관순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때 일본군들이 총을 쏘았습니다. 그러다 유관순 어머니와 아버지가 총에 쓰러졌습니다. 유관순은 화가 나서 일본군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일본군은 화가 나서 칼을 휘둘렀습니다. 유관순은 줄달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유관순은 곧 경찰들에게 잡혔습니다. 어느 날 유관순은 많은 고문으로 인해 끝내 우리나라를 위하여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생을 마감하신 유관순 열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그 때의 사건을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생기게 되었다. 이번 창의적 과제를 통해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었는데 나한테 조금이나마 깊은 충고를 해주는 것 같고 약간의 깨달음을 주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유관순이 겪었던 것처럼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난 과연 유관순처럼 목숨을 바쳐 가면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