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식물기를 읽고

2014.11.04 20:27

SGJ 조회 수:322

 

 파브르 식물기를 읽고

 

 

자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 이름 파브르. 그리고 그의 대표 저서인 파브르 [곤충기]와 [식물기].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파브르는 [식물기]보다 [곤충기]로 유명세를 탄 까닭에 나도 읽어보지 않았던 책이다. 이 책은 파브르가 [곤충기]를 집필하고 나서 90세에서 92세까지 집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 나이에 이르러서까지 자연에 대한 책을 집필했다는 것도 놀라울 일이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책의 문체에 더 눈길이 간다.

이 책을 쓸 당시 저자의 나이가 많아서인지 책은 어린이들에게 식물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되어있는데 저자의 서문에도 ‘어린아이들을 위한 자연의 입문서이자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기술되어있다. 자연의 사실을 기록한 책에 걸맞지 않는 ‘동화’라는 동떨어진 단어에 무슨 소리인고 하며 1장을 넘겨보니 바로 이해가 간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의 헤라클레스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환상과 사실을 넘나들며 히드라의 소개로 그 내용이 전개된다. 마치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구세대의 유물로 치부되는 신화와 지금의 과학을 이루는 객관적인 사실 사이의 연관성 있는 전개가 새삼스러움과 동시에 그 문체의 흡입력에 감탄했다. 글이란 모름지기 그 내용도 중요한 법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도 중요한 법이다. 글의 첫 장에서부터 벌써 나는 놀랐다.

[죽은 물질은 모두 되도록 빨리 생물의 흐름 속으로 되돌려 보내야 하는 것이 공중위생의 법칙이다. 세계 전체의 위생이 여기에 걸려 있다. 이 법칙을 실행하기 위해 곤충과 곰팡이가 존재하고 부지런히 자기의 몫을 노리고 있다. 곰팡이와 벌레들은 사물을 높은 차원에서 보고 있다. 그들은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들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좁은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서로 합의에 이르기는 매우 어렵다.]

책의 일부분을 발췌해본다. 책을 보면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파브르는 곤충과 곰팡이를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들’ 이라 칭하거나 그들과 인간사이의 ‘합의’ 등을 논하고 있다.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마치 고도의 지적인 생명체인 자연을 아직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학화에 익숙해진 지금의 시대에서 흔히 자연의 뒤에 따라붙는 서술어는 ‘자연을 개발하다’, ‘자연을 보존하다’ 는 식인데 이는 인간을 주체로, 자연을 자산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나는 위 발췌문에서 이와는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파브르의 가치관을 볼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나무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옷을 입고 사람들은 남을 위해 단장한다.] 거나 혹은 [식물과 달리 우리는 위생적인 것보다 모양에 더 관심을 두기 쉽지만 그건 썩 좋은 일이 아니다.] 와 같이 인간과 자연을 비슷한 맥락에서 보고 인간이 모름지기 가져야할 심성과 자세를 자연에서 유추하는 등 자연에 대한 그의 마음가짐을 책 전체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하나 더 있다. 다음 발췌문을 살펴보자.

[아궁이에서 장작이 타는 것 그리고 시체가 썩어서 분해되는 것과 동물의 호흡은 궁극적으로 같은 종류의 현상이다. 세 가지 모두 탄소(숯)가 어느 정도의 열을 수반하면서 공기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다. 연소, 호흡, 부패는 화학적으로 동의어이다.]

나는 이 부분을 세 번이나 읽었다. 감명 받아서가 아니라 순간 이해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작과 시체, 동물의 호흡은 웬만해서는 잘 매치가 되지 않는 조합요소들이다. 파브르의 말에 따르면 이 세 가지는 같은 활동들이다. 연소, 호흡, 부패라는 세 가지 요소들이 동의어라는 사실이 왜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을까. 파브르는 무엇을 정의내리는 것과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후세의 아이들에게 ‘신의 도움으로 너희들은 아마 시대에 뒤떨어진 쓸데없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평선은 새로운 생각의 광명으로 가득 차 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고등학교 시절 내가 겪었던 학교교육의 폭력성, 제도를 통해 길들여진 비능동적이고 비자율적인 사고와 행동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연소, 호흡, 부패의 정의와 이를 원리로 한 수십 가지 응용문제들을 풀어왔지만 당장 이것들은 같은 현상이라는 단순한 명제에 대해 얼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시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 아주 미시적이고 유기적이지 못한 과학의 조각들을 붙잡고 머릿속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의 공부를 해왔다고 지적하는 것 같다. 파브르는 단지 어떤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함이지만 그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는 내가 해온 공부에 직접적인 회의감을 던져주었다.

독서란 저자와 독자의 가치관이 만나 의사소통하는 활동이다.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고 나면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전하는 내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파브르의 곤충기를 읽은 것은 식물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 이외에도 책 전반에 깔린 그의 가치관을 엿보고 충격을 받은 일종의 작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파브르는 이 책에서 식물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식물과 더불어 동물 그리고 인간과 우주의 범위까지 전체적이고 유기적인 관점에서 전개해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삶을 살아가는데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해주는 인생의 가이드북으로써의 역할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글 작성시 파일첨부하지 마세요 웹마스터 2014.04.14 1510
공지 독서하기 소개 관리자 2013.10.07 2320
270 '감정터치'를 읽고 [1] 이영우 2015.03.29 397
269 내면적, 외면적으로 변화시켜 준 '배려'를 읽고 [1] 문한영 2014.12.05 435
268 꿈을 개설해 주는 책 '연금술사를 읽고 [1] 김유빈 2014.12.05 352
267 가족의 사랑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준 '아버지'를 읽고 [1] 소은지 2014.12.05 309
266 감사를 깨닫게 해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1] 기경은 2014.12.05 379
265 평생을 곁에 두고싶은 책<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고 [2] 최지영 2014.12.05 360
264 종료되었습니다 - 진정한 죄 값을 치루는 방법이란 한빈 2014.12.03 248
263 나의 엄마, 타샤 튜더 를 읽고 [1] 오주연 2014.12.02 301
262 데미안을 읽고 [1] secret 김서지 2014.12.02 1
261 '유관순' 을 읽고 최가희 2014.12.02 271
260 극복해야 할 인류의 과제 세계의 환경을 읽고 secret 한아름 2014.12.01 2
259 '인생의 의미' 독후감 [1] secret 김혜민 2014.12.01 2
258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secret 박수지 2014.12.01 1
257 개미를 읽고 secret 박지선 2014.12.01 1
256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김윤아 2014.12.01 328
255 엄마를 부탁해 [1] 배지원 2014.12.01 422
254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를 읽고 유아교육학과 추수정 추수정 2014.12.01 248
253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않는다' 를 읽고 홍진경 2014.12.01 369
252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이하정 2014.12.01 348
251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secret 박단비 2014.12.01 1
250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 유아교육학과 이수경 이수경 2014.11.30 244
249 학문의 즐거움을 읽고 [1] 김인아 2014.11.30 299
248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1] 고은선 2014.11.30 406
247 '내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을 읽고 국예지 2014.11.30 297
246 ‘세계를 보는 창 W'을 읽고... [1] secret 윤두준마눌 2014.11.30 2
245 언니가 가출했다. [1] 한소이 2014.11.30 280
244 '어린왕자'를 읽고 신해미 2014.11.30 302
243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1] 진현정 2014.11.30 298
242 '배따라기'를 읽고 [1] 최현지 2014.11.28 255
24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읽고 [1] 조다솔 2014.11.27 276
240 갈매기의 꿈 [1] 이연주 2014.11.26 355
239 덕혜옹주를 읽고... [1] 백지혜 2014.11.18 340
238 말공부를 읽고 [1] 박희원 2014.11.13 304
237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를 읽고 [1] 최계선 2014.11.11 264
236 '블랙차이나'를 읽고 [1] 부끄럼쟁이 2014.11.11 297
235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를 읽고 [1] 부끄럼쟁이 2014.11.11 349
234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읽고 [1] 임현아 2014.11.11 1289
233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1] 김지현 2014.11.10 386
232 <김연아의 7분 드라마>를 읽고..... 나의 생각은 ... [1] 박성범 2014.11.10 353
231 집합론[Set Theory]를 전공 시험에 구애받지 않고 읽어보았다. [1] 장동엽 2014.11.06 305
230 <제인오스틴의 연애론>을 읽고 .. [1] 전지은 2014.11.05 805
» 파브르 식물기를 읽고 [1] SGJ 2014.11.04 322
228 존 듀이,<공공성과 그 문제들>을 읽고 [1] 양운호 2014.11.04 384
227 일상, 그 무채색 백지에 대한 이야기 -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著 [1] 공인성 2014.11.04 271
226 ‘원자력의 거짓말’을 읽고... [1] 송경희 2014.11.02 337
225 '갈매기의 꿈'을 읽고 [1] 김지현 2014.10.29 713
224 레미제라블-빅토르위고 [1] 서태지 2014.10.27 427
223 그녀가 죽길 바라다-정수현 [1] 서태지 2014.10.27 404
222 상품에서 살아있는 인격체로, 린다 브렌트 이야기 [1] 오주연 2014.10.27 276
221 나와 다른 이, 새로운 의식. ' 만가지 슬픔'을 읽고 [1] 오주연 2014.10.27 284
220 1cm+를 읽고 [1] 박희원 2014.10.21 368
219 도가니를 읽고 홍진경 2014.10.05 410
218 희생양을 뺸 평화, '방관자'를 읽고 [1] 오주연 2014.10.04 504
217 연어를 읽고 박모세 2014.10.01 319
216 닉부이치치 - 허그 [1] 오수진 2014.10.01 584
215 '왜 학교는 불행한가'를 읽고... [1] 오수진 2014.10.01 375
214 마시멜로 이야기 김승주 2014.10.01 418
213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을 읽고 og 2014.09.30 366
212 '지구별 사진관'을 읽고 이산들 2014.09.30 274
211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 최누리 2014.09.29 1488
210 인생의 마음가짐이 담긴 <세월이 젊음에게> [1] 차하늘 2014.09.29 318
209 너 외롭구나를 읽고 박지선 2014.09.29 372
208 그럼에도 , 여행을 읽고 서지혜 2014.09.29 423
207 '내 몸을 찾습니다'를 읽고 오유정 2014.09.29 351
206 '부모의 습관이 아이를 망친다'를 읽고 국예지 2014.09.29 345
205 뒤바뀐 딸을 읽고 [1] 배지원 2014.09.29 298
204 김용택 <사람> [1] 진현정 2014.09.29 306
203 Hello! 멘토 김윤아 2014.09.29 293
202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고 김서지 2014.09.29 881
201 나무를 심은사람을 읽고 하은경 2014.09.29 387
200 '책, 세상을 훔치다'를 읽고 [1] 김혜민 2014.09.29 324
199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를 읽고 [1] 신해미 2014.09.29 583
198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오바마 이야기' 의 이야기 secret 박단비 2014.09.28 3
197 '스물아홉 생일, 1년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읽고 [1] 김인아 2014.09.28 427
196 긍정의 힘을 읽고 고은선 2014.09.28 568
195 몽실언니를 읽고. 이유진 2014.09.28 505
194 '도가니'를 읽고 최가희 2014.09.28 340
193 '괴짜심리학'을 읽고 [1] 강소영 2014.09.28 343
192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를 읽고 [1] 최현지 2014.09.28 278
191 漢醫學의 批判과 解說(한의학의 비판과 해설)을 읽고 [1] 박상빈 2014.09.28 263
190 '너의 꿈, 지금부터 시작이야'를 읽고 [1] secret 윤두준마눌 2014.09.28 4
189 '덕혜옹주'를 읽고 [1] 김지현 2014.09.28 542
188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고 [1] 양지연 2014.09.28 583
187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박수지 2014.09.28 429
186 악으로 깡으로를 읽고 박미령 2014.09.28 343
185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읽고 [1] 우혜원 2014.09.27 373
184 나의라임오렌지나무를 읽고 이하정 2014.09.25 603
183 몽실언니를읽고 한아름 2014.09.25 310
182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추수정 2014.09.25 506
181 '자기혁명', 총장님과 함께하는 독서클럽에서 [1] 양운호 2014.09.25 337
180 '천금말씨'를 읽고 [1] ksh 2014.09.24 531
179 고대 서양문명의 비교('서양 문화의 역사 고대편'을 읽고) [1] 장동엽 2014.09.24 350
178 미치도록 가렵다 저자 김선영의 책을 읽고 [1] 문호섭 2014.09.24 344
177 “1cm, 일 센티 첫 번째 이야기” 라는 책을 읽고 [1] 조다솔 2014.09.23 403
176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 [1] 주유정 2014.09.23 603
175 사람을 움직이는 따뜻한 포옹 [1] 오주연 2014.09.21 354
174 더 나은 삶을 사는 법 - 환생 프로젝트를 읽고 [1] 오주연 2014.09.21 350
173 늙으신 어머니의향기 를 읽고 [1] 김주희 2014.09.15 433
172 '아이들은 자연이다' [1] 한소이 2014.09.10 379
171 마지막 잎새를 읽고 [1] 이연주 2014.09.06 653

(520-714) 전남 나주시 건재로 185번지 동신대학교 Tel. 061-330-3015~8 Fax 061-330-3019

Copyright (c)2013 동신대학교 홍보협력팀. ALL Rights Reserved. All Right Reserved.

d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