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4 20:27
파브르 식물기를 읽고
자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 이름 파브르. 그리고 그의 대표 저서인 파브르 [곤충기]와 [식물기].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파브르는 [식물기]보다 [곤충기]로 유명세를 탄 까닭에 나도 읽어보지 않았던 책이다. 이 책은 파브르가 [곤충기]를 집필하고 나서 90세에서 92세까지 집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 나이에 이르러서까지 자연에 대한 책을 집필했다는 것도 놀라울 일이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책의 문체에 더 눈길이 간다.
이 책을 쓸 당시 저자의 나이가 많아서인지 책은 어린이들에게 식물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되어있는데 저자의 서문에도 ‘어린아이들을 위한 자연의 입문서이자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기술되어있다. 자연의 사실을 기록한 책에 걸맞지 않는 ‘동화’라는 동떨어진 단어에 무슨 소리인고 하며 1장을 넘겨보니 바로 이해가 간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의 헤라클레스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환상과 사실을 넘나들며 히드라의 소개로 그 내용이 전개된다. 마치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구세대의 유물로 치부되는 신화와 지금의 과학을 이루는 객관적인 사실 사이의 연관성 있는 전개가 새삼스러움과 동시에 그 문체의 흡입력에 감탄했다. 글이란 모름지기 그 내용도 중요한 법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도 중요한 법이다. 글의 첫 장에서부터 벌써 나는 놀랐다.
[죽은 물질은 모두 되도록 빨리 생물의 흐름 속으로 되돌려 보내야 하는 것이 공중위생의 법칙이다. 세계 전체의 위생이 여기에 걸려 있다. 이 법칙을 실행하기 위해 곤충과 곰팡이가 존재하고 부지런히 자기의 몫을 노리고 있다. 곰팡이와 벌레들은 사물을 높은 차원에서 보고 있다. 그들은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들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좁은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서로 합의에 이르기는 매우 어렵다.]
책의 일부분을 발췌해본다. 책을 보면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파브르는 곤충과 곰팡이를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들’ 이라 칭하거나 그들과 인간사이의 ‘합의’ 등을 논하고 있다.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마치 고도의 지적인 생명체인 자연을 아직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학화에 익숙해진 지금의 시대에서 흔히 자연의 뒤에 따라붙는 서술어는 ‘자연을 개발하다’, ‘자연을 보존하다’ 는 식인데 이는 인간을 주체로, 자연을 자산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나는 위 발췌문에서 이와는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파브르의 가치관을 볼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나무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옷을 입고 사람들은 남을 위해 단장한다.] 거나 혹은 [식물과 달리 우리는 위생적인 것보다 모양에 더 관심을 두기 쉽지만 그건 썩 좋은 일이 아니다.] 와 같이 인간과 자연을 비슷한 맥락에서 보고 인간이 모름지기 가져야할 심성과 자세를 자연에서 유추하는 등 자연에 대한 그의 마음가짐을 책 전체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하나 더 있다. 다음 발췌문을 살펴보자.
[아궁이에서 장작이 타는 것 그리고 시체가 썩어서 분해되는 것과 동물의 호흡은 궁극적으로 같은 종류의 현상이다. 세 가지 모두 탄소(숯)가 어느 정도의 열을 수반하면서 공기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다. 연소, 호흡, 부패는 화학적으로 동의어이다.]
나는 이 부분을 세 번이나 읽었다. 감명 받아서가 아니라 순간 이해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작과 시체, 동물의 호흡은 웬만해서는 잘 매치가 되지 않는 조합요소들이다. 파브르의 말에 따르면 이 세 가지는 같은 활동들이다. 연소, 호흡, 부패라는 세 가지 요소들이 동의어라는 사실이 왜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을까. 파브르는 무엇을 정의내리는 것과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후세의 아이들에게 ‘신의 도움으로 너희들은 아마 시대에 뒤떨어진 쓸데없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평선은 새로운 생각의 광명으로 가득 차 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고등학교 시절 내가 겪었던 학교교육의 폭력성, 제도를 통해 길들여진 비능동적이고 비자율적인 사고와 행동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연소, 호흡, 부패의 정의와 이를 원리로 한 수십 가지 응용문제들을 풀어왔지만 당장 이것들은 같은 현상이라는 단순한 명제에 대해 얼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시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 아주 미시적이고 유기적이지 못한 과학의 조각들을 붙잡고 머릿속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의 공부를 해왔다고 지적하는 것 같다. 파브르는 단지 어떤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함이지만 그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는 내가 해온 공부에 직접적인 회의감을 던져주었다.
독서란 저자와 독자의 가치관이 만나 의사소통하는 활동이다.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고 나면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전하는 내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파브르의 곤충기를 읽은 것은 식물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 이외에도 책 전반에 깔린 그의 가치관을 엿보고 충격을 받은 일종의 작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파브르는 이 책에서 식물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식물과 더불어 동물 그리고 인간과 우주의 범위까지 전체적이고 유기적인 관점에서 전개해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삶을 살아가는데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해주는 인생의 가이드북으로써의 역할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