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4 01:36
한국연구재단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대회에 제출한 원고입니다.
이왕 작성한 것 널리 알리고자 드림투게더에도 올립니다^^
A4 다섯장 분량의 독후감이니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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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의 문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에서 길을 묻다
공공성 문제에 대한 사색을 시작하며
최근 독재 옹호, 여성 권리 축소 등의 인터뷰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함익병 이라는 피부과 원장이 있다. “독재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밝혀 출현하던 방송에서 하차했는데, 그는 “‘민주’란 말만 붙으면 최고라고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 않다. 만약 대한민국이 1960년대부터 민주화했다면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나? 박정희의 독재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분의 의견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오늘날 민주주의와 그 체제를 구성하는 공동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많다. 2년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인문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독서 열풍을 일으켰던 것도 이 문제와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 철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으로서 앞으로 내가 계속 구성원으로서 살아가야 할 공동체, 미래의 자식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공동체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그러한 의미에서 1926년, 그 당시 시대 의식과는 독특한 사회 철학을 내놓은 존 듀이의 <공공성과 그 문제들>은 약 100년이 지난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내놓고 있다.
<공공성과 그 문제들>을 읽고 작성하는 이 글에서는 존 듀이의 사회 철학의 정수가 담긴 책을 요약하고,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 가장 각광받는 두 사회 철학자 존 롤즈와 마이클 샌델에 대해 소개 그리고 존 듀이와 이 두 철학자가 가지는 공통점 및 차이점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어언 10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존 듀이의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와 굉장히 유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마무리로 존 듀이의 오래된 철학이 마치 앨범 속 빛바랜 사진처럼 아직까지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나의 느낀 점을 회고하고자 한다.
존 듀이의 공공성 문제
존 듀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고등학생 때 선택과목으로 윤리를 들어야만 실용주의 철학자로 1장 소개되어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마저도 존 듀이의 사회 철학은 특별히 언급되어 있지도 않다. 미국의 20세기 초반 철학자인 그는 기존의 자유주의와는 다른 자유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업적들은 무시 받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 평가받았다고 한다. 기존의 사회철학, 그 중에서도 자유주의적 관점은 개인과 사회 양자 간이 겪는 갈등과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논의를 전개했다. 그 논의 과정에서는 논리적 완결성을 가지는 이론들도 분명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존 듀이는 개인과 사회를 대립적으로 놓는 그 토대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보았다. 그 어느 사회에도 속하지 않은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공동체의 삶과 상호의존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개인의 자유나 권리의 문제는 공동체의 목표와 관련되어 설정되어야 함을 최우선적인 전제로 한 채 존 듀이의 사회철학은 시작된다.
그에게 있어 공공성이란 “사회적인 개인들이 연합된 행위를 통해 조직화해야 할 그 무언가“이다. 개인은 사회에 떼놓고 살 수 없기 때문에 공공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무엇일까? 듀이는 공적인 것이란 어떤 행동의 결과가 관계 되지 않은 사람들의 복리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공적, 행동의 결과가 관여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될 때는 사적이라고 분류하였다. 이렇게 정의한 공공성을 지키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이해관계의 보호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한정지었다. 국가란 위의 가치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무원을 통해 수행된 공공성의 조직인 것이다.
따라서 듀이에게 좋은 국가란 “국가가 얼마나 개인을 부정적 투쟁과 무익한 갈등의 낭비에서 보호하면서도 개인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정적 확신과 원조를 제공하는가?”가 척도가 된다. 즉 공무원들에게 부여된 권력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지 말아야 하며, 시민들 또한 공무원들을 지속해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 이외에 어떻게 하면 공무원들이 공적인 목표를 위해 사적인 이익과 욕망을 배제하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부단한 과정의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공공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끊임없는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존 듀이는 민주주의 중요성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설파한다. 이 후에 존 듀이는 20세기 초반 미국 민주주의의 형성 과정과 그 시대 미국 민주주의의 공공성이 사라진 원인을 진단한다. 미국 민주주의는 예외로 하더라도 공공성이 사라진 원인에 대한 존 듀이의 해석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읽어도 상통하는 부분들이 많다.
‘글로벌’,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식상해질 정도로 오늘날 공동체는 지역 공동체를 훨씬 넘어서 거대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연합체가 지역 공동체를 집어삼킬 만큼 커졌고 그에 따라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 또한 커졌다. 이는 오늘날 투표율이 저조해지는 우리 사회와도 별반 다를바 없다. “오늘날 정당은 지배하기는 하되 통치하지는 못 한다.”라고 말이 일리가 있을 정도로 정치 연합체와 공동체 간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민주주의(비록 20세기 초반에 작성된 글이지만)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상적인 공동체와 공공성을 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존 듀이의 답: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
책에서 존 듀이는 지금까지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이 민주주의 과제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그 해결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 오늘날의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존 듀이는 자신의 허무맹랑한 유토피아를 제시하지 않고, 민주주의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을 밝혀준다. 그 조건이란 공공성의 침식을 억제하기 위해 비정치적인 힘이 자기 스스로 조직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즉 분화된 구성원들이 통합을 이루어내어야 한다. 오늘날의 거대 사회를 하나의 거대 공동체로 통합하려면 구성원들이 개별적 관심과 목표를 서로 공유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함께 찾아나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구성원들이 함께하려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이라고 존 듀이는 말한다. 따라서 의사소통을 하려면 공허한 유토피아가 아닌 ‘사실로서의 공동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한다.
공동체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의 가치는 추상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였을 때 공동체 안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란 결국 구성원들이 처한 상황들에 대해서 서로 배려하고 이끌어 줌으로써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가치이다. 한 개인이 그가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되고, 이 구성원은 의사소통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즉 개인의 자유나 권리의 문제는 공동체의 목표와 관련되어서 고려해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내 에서 의사소통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는 필수적이다.
의사소통을 넘어서 개인이 공동체의 삶에 스며들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의사소통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겠지만, “밀접하고 직접적인 교제와 애착의 생생함과 깊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존 듀이는 민주주의가 이웃 공동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오늘날 민주주의 문제가 거대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분명 타당한 주장이다. 이웃 공동체로부터의 시작을 통해 공동체의 공통적인 목표와 개인의 삶의 목표를 대립하지 않고 연결한다면 개성 있는 삶을 구현하는 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존 듀이에게 있어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공공성이란, 형식적인 절차로서의 민주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이상적인 민주주의다. 사람들이 함께 살고, 일하고, 학습하는 과정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설령 아무리 청렴결백한 사람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가 공무원이 되더라도 사람인 이상 공중의 이익을 배반하고 사적인 이익과 욕망을 추구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제도와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로 공공성을 지키는 것은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함께 살고, 일하고, 학습하는 속에서 세상 물정에 밝고 현명하며 자립적인 판단의 주체가 되는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지 않고서는 참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존 듀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에서 길을 묻다
존 듀이의 사회철학은 20세기 초반 각광을 받지 못했다. 기존의 자유주의, 주류 학설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유주의인 존 로크와 칸트, 존 스튜어트 밀 등의 주장은 일부 차이는 있지만 모두 도덕적, 형이상학적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개인이 가지는 천부적인 권리 라던가 사회 계약을 통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정의론>이란 책으로 국내 철학 교과서, 대학수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롤즈라는 자유주의자의 사회철학이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자유롭고 평등한 각 개인이 자신이 속할 공동체에 대한 조건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고실험을 한다면(이를 무지의 베일이라고 한다), 개인들이 합의하는 사회제도는 가진 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하는 모든 이에게 똑같은 이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어느 계층에 속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다면, 가지지 못한 자로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존재하기에 탄탄한 안전 장치가 주어진 사회제도를 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롤즈의 정의론은 반세기에 이르러 오늘날까지도 그 도덕적인 논리성 때문에 자잘한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쌓아올려진 사회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와는 다른 견고한 사회철학 또한 부상하는 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등으로 최근 우리 한국 사회에 흥행을 한 마이클 샌델이라는 철학자가 있다. 그는 공동체주의를 주장했는데, 공동체주의란 선과 공동선을 중시하며 진정한 자기 이해는 타인과 교섭하면서 달성된다는 내용이다. 샌델은 정치적 주체로서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에 주목하고 기존의 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개인은 태어나면서 추상적인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니라 타인과 교류하면서 그 권리를 스스로 쟁취한다는 논리인데, 즉 개인과 사회를 대립하는 상태로 조건을 둔 채 사회제도를 선택한다는 점 자체가 잘못 시작된 논의라는 것이다. 사회와 무관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은 그 공동체 내에서 문화와 가치, 자유 뿐 만 아니라 의무 또한 학습하고 느끼며 그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사회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존 듀이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과 공공성에 대한 입장과 일련 상통한다.
다시 존 듀이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사실 책을 처음 읽은 순간에는 특별한 감흥을 가지지 못 했다. 왜냐하면 위의 문단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존 듀이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점과 그 해답이 마이클 샌델과 많이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완독한 후 이 책이 1926년에 존 듀이가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존 듀이가 활동한 20세기 초반은 공동체주의가 태동하기 전이었고, 자유주의가 사회철학의 주요한 역할을 한 시대였다. 철학은 그 시대의 문제점에 맞는 현황과 해결방안을 내놓는 만큼 20세기 초반의 자유주의는 시대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합리적인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존 듀이는 인정을 많이 못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그 시대의 흐름에 따른 공동체주의가 부상하기 시작했고 현재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열띤 학술적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존 듀이의 <공공성과 그 문제들>은 20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와 21세기 초반의 공동체주의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의 간격을 탄탄한 다리마냥 지탱해주는 존 듀이를 보면서 그 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했지만 사후에 그 실력을 인정받은 피카소나 반 고흐 같은 예술가들이 떠올랐다. 아직 존 듀이의 사회철학이 그의 다른 사상인 실용주의나 교육론만큼 시대의 인정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라는 개인이 최근에 출판한 그의 책을 읽어보고 소감을 써봄으로써 그 작은 발걸음을 내딛어본다.
마치며, 오래된 앨범 속 빛바랜 사진 같은 존 듀이
약 100년이 지난 세월이지만, 존 듀이는 오래된 앨범 속 빛 바랜 사진마냥 우리에게 여러 생각을 전해준다. 오늘날 그가 말한 것처럼 사회는 거대해졌다. 그렇지만 거대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 거대 사회가 되었을 뿐이다. 그 속에서 구성원들의 집단은 분열되었다. 우리나라 사회를 돌이켜봐도 좌파와 우파 양쪽 진영 간의 소모적인 논쟁들, 서로 소통하지 않는 지역갈등, 각종 정치적 분쟁(과세, 세월호, FTA 등)에 대해 토론함에 있어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한 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싸우기만 하고 ‘소통’하지 않는 시민들, 가진 자와 없는 자 간의 양극화 문제 등 모든 사회구성원이 함께 살고, 일하고, 학습하는 행동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그 사이의 한 지점에서 존 듀이는 20세기 민주주의 뿐 아니라 21세기 현대 민주주의 까지 모두 어우르는 실천적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가 내놓은 대안을 현실적인 상황에 맞게 고려한 후, 즉 의사소통의 과정을 거친 후 공동체 속 구성원으로서 공공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으로서 ‘나는’ <공공성과 그 문제들>이라는 책을 통해 과거의 존 듀이와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었다. 비록 같은 시대를 살지는 못 했지만 이 거대 공동체를 함께 영유했던 구성원으로서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나에게 깊고 진정성 있게 전달되었기를 믿는다. 또한 피카소나 반 고흐의 작품처럼, 그가 고뇌해서 만든 사회철학이라는 예술작품이 언젠가 명작이 될 수 있기를, 내가 그 명작을 함께한 구성원이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