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1 11:56
책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시작이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엄마를 잃어버린다면 어떤 느낌일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완벽했고, 본보기이자 롤모델이었다. 엄마가 말하는 것은 나에게 거의 정답이었고 옳은 길이라고 느껴졌다. 어떤 때는 그 정답이란 것에 권위까지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것에 도전하려고 엄마와 사소한 다툼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완벽한 엄마가 없어지다니? 나에게 지표이자 등대이자 방향인 엄마가 길을 못 찾는다니? 상상할 수 없는 문제였다.
책에서 가족들은 엄마를 백방으로 찾으러 다니지만 엄마를 찾지 못한다. 초췌한 모습의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 몇 명의 말만 들을 뿐, 엄마를 찾지 못한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가족들은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전하려하고,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만 그 것을 깨달았을 때 단 한 순간도 엄마와 조우할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사랑이 늘 한결같아서 어떨 땐 당연한 것이 되고, 그 거룩함을 잊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엄마, 아빠를 봤을 때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는 엄마에게 나도 다 해드리지 못한 말이 많다. 만약 부모님을 잃어버린다면 그 책의 자식들처럼 똑같은 후회를 하고 똑같이 하지 못한 말들만 갖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은 어땠는지,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고, 하나의 세계였다. 엄마는 당연히 엄마였기에 엄마의 그 전의 삶은 나에게 없는 것이었다. 책에서 엄마를 자식들은 마치 음식을 만드는 공장 같다고 했다. 그렇게 희생하고 서럽게 살던 엄마는 결국 남을 위해 살다가 자기 자신은 텅텅 비어 결국 기억도 잘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자식들은 말한다. 주인공 엄마의 목소리가 화자가 될 때 엄마는 그렇게 말한다. 나 이제 돌아간다고, 나도 엄마가 필요했다고, 우리 엄마가 ‘내 새끼’ 하며 안아줄 곳으로.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구나. 엄마에게도 엄마의 하나의 세계였던 엄마가 있었구나. 생각했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정갈하고 단정했다. 집안일에서도 그런 것을 나는 싫어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들반들 닦는 방바닥이 싫었고, 내가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손사래를 치는 손이 싫었다. 이제 엄마를 생각하라고 엄마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묻곤 한다. 이런 저런 걱정 다 버리고 그냥 훌쩍 여행이라도 가고, 밥걱정 말고 밖에서 늦게 놀고 들어오기도 하라고 했다. 엄마는 드럼이 치고 싶었지만 이젠 오른 팔을 많이 써 근육이 찢어져 할 수 없다고 했고, 돈 때문에 공부를 많이 못한 것이 아쉬워 공부를 하고 싶지만 노안이 와서 책을 오래볼 수 없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집에 있을 식구들의 끼니 걱정에 가지 못하는 것 같고, 늦게 놀고 오고 싶지만 지금은 입도 안대는 소주도 곧잘 마셨다는 처녀적의 기억이 오래돼서 엄마는 노는 법마저 잊어버린 것 같았다. 우리가 크는 동안 엄마의 시간은 그렇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멈춰버렸나 보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 비어버린 엄마에게 나는 쉽게 짜증을 냈고 당연한 듯이 부탁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잊을 채. 엄마에게 나는 받은 만큼 돌려드리지 못해도 언제 어디서든 기댈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딸이 되고 싶다. 엄마에게 한 때 우리 세 명은 고단한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이유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내가 엄마에게 큰 의미였듯 엄마도 내게 그 의미 이상이었다. 엄마에게 ‘엄마는 내가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단 한명의 사람이야’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나 자신보다 아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 아닐까. 이런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할 때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보통의 이별은 그렇게 아쉽고도 아쉬운 것이겠지만 하고픈 말로만 얼룩진 이별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그 이별이 누구와 어떤 종류의 이별이든 간에 예기치 않는 이별을 겪곤 한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더라도 어디선가 다시 만나겠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큰 안부가 되겠지 하고 쉽게 인사를 하곤 한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 삶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 내 삶이 그들로 인해 풍요롭고 의미 있다는 것을, 존재 자체로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 전하고 싶다.
언젠가 ‘어떤 사람의 뒷모습이 작아져 보인다면 사랑이 시작된 것입니다.’라는 말은 어느 강연에서 들었다. 그 뒷모습이 더 작아지지 않도록 언제나 응원하는 딸이자 친구인 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내 엄마여서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매일 전할 것이다. 나를 믿어주는 친구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종교인이나 교수님이나 옳은 소리만 하는 tv의 수많은 존경받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이제는 추억이 돼버린 기억이 사랑인지, 그런 사소한 물음 끝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지금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감정을 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중 하나라는 것이다. 또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필요했다. 가까이에서 죽음을 맞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희미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나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죽음을 느껴보도록 한 책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생의 마지막 회고록이 쓰여 지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그 순간을 간호하는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사랑도 죽음도 그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나에게 조금은 실마리를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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